원룸 계약을 마치고 나면 통장 사정은 다들 비슷해집니다. 보증금과 중개수수료, 이사비까지 치르고 나면 자취 살림 장만에 쓸 수 있는 돈은 50만원 안팎. 그런데 이 돈이 깨지는 방식에는 패턴이 있습니다. 품목을 빠뜨려서가 아니라, 급을 잘못 골라서예요. 15만원을 써야 할 자리에 5만원짜리를 샀다가 석 달 만에 다시 사고, 3만원이면 충분한 자리에 12만원을 쓰는 식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살 것 목록을 다시 늘어놓는 대신 50만원을 네 구간으로 쪼개는 배분만 다룹니다. 사는 순서가 궁금하다면 첫 살림 우선순위 체크리스트를 먼저 보세요. 여기서는 돈 얘기만 합니다.

노트에 살림 예산을 적으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
사진: olia danilevich / Pexels

장바구니보다 계약서가 먼저다

예산 계획의 첫 단계는 쇼핑앱이 아니라 계약한 방입니다. 냉장고·세탁기·에어컨이 옵션으로 붙은 풀옵션 방이라면 가장 비싼 세 항목이 통째로 예산에서 빠져요. 이 확인을 건너뛰고 주문부터 했다가 이사 당일 빌트인 냉장고를 발견하는 일이 의외로 흔합니다. 부분옵션이라도 세탁기 하나만 있으면 초기 지출의 무게가 확 달라지고요.

옵션이 있다면 상태와 크기까지 물어보세요. 빌트인 냉장고가 40L급 원도어라면 냉동칸이 사실상 없어서, 배분은 "냉장고 없는 방" 기준으로 세우는 편이 맞습니다. 커튼레일이 달려 있는지, 조명은 몇 개인지도 이때 같이 확인하면 압축봉이니 스탠드 조명이니 하는 자잘한 지출이 줄어듭니다.

50만원은 네 구간으로 쪼갠다

배분표부터 보여드리고, 각 구간의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하겠습니다.

구간 배분 들어가는 것
잠자리 15만원 안팎 매트리스(또는 토퍼)·이불·베개
냉장고 10만원대 초중반 냉동 겸용 80~90L급
생활 하한선 10만원 안팎 전자레인지·건조대·행거·청소용품·멀티탭
예비비 10만원 살아보고 드러나는 그 방 고유의 지출

합치면 45만~55만원 사이에서 움직입니다. 냉장고가 옵션인 방이라면 그 몫을 다른 데 얹지 말고 그냥 안 쓰는 돈으로 남겨두세요. 예산이 남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돈을 써야 하는 곳은 잠자리와 냉장고, 둘뿐이다

잠자리에 가장 큰 몫을 주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루 6~7시간, 살림 전체에서 사용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고, 잘못 사면 돈이 아니라 몸으로 갚거든요. 바닥에 얇은 요 한 장 깔고 버티는 계획은 2주를 못 갑니다. 두께 10cm 이상의 접이식 매트리스나 7cm 토퍼가 현실적인 하한선이고, 이불·베개까지 묶어도 15만원 안팎이면 만들어져요. 토퍼와 매트리스 중 뭐가 맞는지는 바닥 취침 기준 정리에 따로 적어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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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는 아낀 만큼 다시 쓰게 되는 대표 품목입니다. 원도어 40L급은 값이 절반이라 눈이 가지만, 냉동칸이 없거나 얼음틀 수준이라 냉동밥도 만두도 못 넣어요. 결국 배달이 늘면서 아낀 기기값을 식비로 도로 내게 됩니다. 혼자 살아도 냉동 겸용 80~90L급이 하한선이라고 보는 이유인데, 용량별로 뭘 후회하게 되는지는 미니 냉장고 용량 가이드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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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전부 하한선으로 사도 티가 안 난다

전자레인지가 좋은 예입니다. 센서 조리, 스팀, 그릴이 붙을수록 값이 몇 배로 뛰지만 자취방에서 하는 일은 데우기와 해동이 전부예요. 20L 다이얼식이면 충분하고, 오히려 조작부가 단순해서 고장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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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대, 행거, 돌돌이, 멀티탭도 같은 구간입니다. 이 물건들은 저가와 고가의 체감 차이가 가장 작은 영역이라, 넷을 합쳐 10만원 안에서 끊는 걸 목표로 잡으면 됩니다.

반대로 이 50만원에 아예 넣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무선청소기, 밥솥, 에어프라이어.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급하지 않아서 미루는 거예요. 첫 달 청소는 돌돌이로 충분히 버티고, 밥솥은 즉석밥과 비용을 비교해 본 뒤에 사도 늦지 않습니다. 이 셋이 첫 장바구니에 들어 있다면 잠자리나 냉장고에서 돈을 뺐다는 뜻이라, 배분이 거꾸로 된 겁니다.

10만원은 쓰지 말고 남겨라

예비비를 한 구간으로 박아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방이든 2주쯤 살아보면 그 방에서만 생기는 지출이 드러나요. 창문 웃풍이 심해서 커튼을 두꺼운 걸로 바꿔야 한다거나, 방충망에 구멍이 있다거나, 옷 수납이 예상보다 부족하다거나. 이건 방마다 달라서 미리 살 수가 없습니다. 첫 주에 50만원을 전부 소진하면 이 지출이 전부 적자가 되고, 10만원을 남겨두면 그냥 계획의 일부가 됩니다.

물론 이 배분이 안 맞는 사람도 있어요. 요리를 실제로 자주 한다면 주방 몫을 따로 10만원 이상 떼야 하고, 재택근무라면 책상과 의자가 냉장고보다 먼저입니다. 그 경우 어디를 줄일지 정해야 하는데, 순서는 예비비가 아니라 생활 하한선 구간부터 줄이는 게 덜 아픕니다. 예비비는 마지막까지 지키세요.

오늘 할 일은 장바구니 채우기가 아니라, 계약한 방의 옵션을 확인하고 위 표의 숫자를 자기 생활에 맞게 고치는 것입니다. 구간별 숫자가 정해지면 쇼핑은 하루면 끝나요.

이 글은 상품 스펙과 실사용 후기를 기준으로 분석한 내용입니다. 가격은 수시로 바뀌니 구매 전 판매 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