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계약을 마치고 나면 통장 사정은 다들 비슷해집니다. 보증금과 중개수수료, 이사비까지 치르고 나면 자취 살림 장만에 쓸 수 있는 돈은 50만원 안팎. 그런데 이 돈이 깨지는 방식에는 패턴이 있습니다. 품목을 빠뜨려서가 아니라, 급을 잘못 골라서예요. 15만원을 써야 할 자리에 5만원짜리를 샀다가 석 달 만에 다시 사고, 3만원이면 충분한 자리에 12만원을 쓰는 식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살 것 목록을 다시 늘어놓는 대신 50만원을 네 구간으로 쪼개는 배분만 다룹니다. 사는 순서가 궁금하다면 첫 살림 우선순위 체크리스트를 먼저 보세요. 여기서는 돈 얘기만 합니다. 참고로 이 50만원 앞에 놓인 이사비·보증금 쪽에서 새는 돈은 원룸 이사 체크리스트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장바구니보다 계약서가 먼저다
예산 계획의 첫 단계는 쇼핑앱이 아니라 계약한 방입니다. 냉장고·세탁기·에어컨이 옵션으로 붙은 풀옵션 방이라면 가장 비싼 세 항목이 통째로 예산에서 빠져요. 이 확인을 건너뛰고 주문부터 했다가 이사 당일 빌트인 냉장고를 발견하는 일이 의외로 흔합니다. 부분옵션이라도 세탁기 하나만 있으면 초기 지출의 무게가 확 달라지고요.
옵션이 있다면 상태와 크기까지 물어보세요. 빌트인 냉장고가 40L급 원도어라면 냉동칸이 사실상 없어서, 배분은 "냉장고 없는 방" 기준으로 세우는 편이 맞습니다. 커튼레일이 달려 있는지, 조명은 몇 개인지도 이때 같이 확인하면 압축봉이니 스탠드 조명이니 하는 자잘한 지출이 줄어듭니다.
50만원은 네 구간으로 쪼갠다
배분표부터 보여드리고, 각 구간의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하겠습니다.
| 구간 | 배분 | 들어가는 것 |
|---|---|---|
| 잠자리 | 15만원 안팎 | 매트리스(또는 토퍼)·이불·베개 |
| 냉장고 | 10만원대 후반~20만원대 초반 | 냉동 겸용 80~90L급 |
| 생활 하한선 | 10만원 안팎 | 전자레인지·건조대·행거·청소용품·멀티탭 |
| 예비비 | 10만원 | 살아보고 드러나는 그 방 고유의 지출 |
합치면 53만~56만원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50만원을 넘습니다. 냉동 겸용 80~90L급 신품이 지금 시세로 20만원 언저리라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냉장고 하나가 가져가거든요. 그러니 딱 50만원 안에서 끝내야 한다면 조일 곳은 정해져 있습니다. 잠자리를 접이식 매트리스 대신 7cm 토퍼로 내려 12만원 선을 잡고, 생활 하한선을 8만원으로 조이면 50만원 안팎에 맞습니다. 예비비 10만원은 건드리지 마세요 — 이유는 아래에 씁니다. 반대로 냉장고가 옵션인 방이라면 20만원이 통째로 빠지니 30만원대로 끝나는데, 남은 몫을 다른 데 얹지 말고 그냥 안 쓰는 돈으로 두면 됩니다.
돈을 써야 하는 곳은 잠자리와 냉장고, 둘뿐이다
잠자리에 가장 큰 몫을 주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국가데이터처 2024년 생활시간조사에서 10세 이상 국민의 수면시간은 평일 7시간 45분, 토요일 8시간 31분, 일요일 8시간 49분이었습니다. 살림 중에 이만큼 오래 몸에 닿는 물건이 없고, 잘못 사면 돈이 아니라 몸으로 갚거든요. 바닥에 얇은 요 한 장 깔고 버티는 계획은 2주를 못 갑니다. 두께 10cm 이상의 접이식 매트리스나 7cm 토퍼가 현실적인 하한선이고, 이불·베개까지 묶어도 15만원 안팎이면 만들어져요. 토퍼와 매트리스 중 뭐가 맞는지는 바닥 취침 기준 정리에 따로 적어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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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이식 매트리스 10cm 이상 (싱글)
바닥 생활이라면 이 두께가 허리를 지키는 하한선
냉장고는 아낀 만큼 다시 쓰게 되는 대표 품목입니다. 원도어 40L급은 값이 절반이라 눈이 가지만, 냉동칸이 없거나 얼음틀 수준이라 냉동밥도 만두도 못 넣어요. 결국 배달이 늘면서 아낀 기기값을 식비로 도로 내게 됩니다. 혼자 살아도 냉동 겸용 80~90L급이 하한선이라고 보는 이유인데, 용량별로 뭘 후회하게 되는지는 미니 냉장고 용량 가이드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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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냉장고 80~90L (냉동 겸용)
40L에서 갈아타는 사람은 많아도 반대는 없는 용량
나머지는 전부 하한선으로 사도 티가 안 난다
전자레인지가 좋은 예입니다. 센서 조리, 스팀, 그릴이 붙을수록 값이 몇 배로 뛰지만 자취방에서 하는 일은 데우기와 해동이 전부예요. 20L 다이얼식이면 충분하고, 오히려 조작부가 단순해서 고장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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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레인지 20L 다이얼식
기능을 뺄수록 정답에 가까워지는 품목
건조대, 행거, 돌돌이, 멀티탭도 같은 구간입니다. 이 물건들은 저가와 고가의 체감 차이가 가장 작은 영역이라, 넷을 합쳐 10만원 안에서 끊는 걸 목표로 잡으면 됩니다.
반대로 이 50만원에 아예 넣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무선청소기, 밥솥, 에어프라이어.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급하지 않아서 미루는 거예요. 첫 달 청소는 돌돌이로 충분히 버티고, 밥솥은 즉석밥과 비용을 비교해 본 뒤에 사도 늦지 않습니다. 이 셋이 첫 장바구니에 들어 있다면 잠자리나 냉장고에서 돈을 뺐다는 뜻이라, 배분이 거꾸로 된 겁니다.
10만원은 쓰지 말고 남겨라
예비비를 한 구간으로 박아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방이든 2주쯤 살아보면 그 방에서만 생기는 지출이 드러나요. 창문 웃풍이 심해서 커튼을 두꺼운 걸로 바꿔야 한다거나, 방충망에 구멍이 있다거나, 옷 수납이 예상보다 부족하다거나. 이건 방마다 달라서 미리 살 수가 없습니다. 첫 주에 50만원을 전부 소진하면 이 지출이 전부 적자가 되고, 10만원을 남겨두면 그냥 계획의 일부가 됩니다.
물론 이 배분이 안 맞는 사람도 있어요. 요리를 실제로 자주 한다면 주방 몫을 따로 10만원 이상 떼야 하고, 재택근무라면 책상과 의자가 냉장고보다 먼저입니다. 이때 식탁을 겸하게 할지 따로 둘지는 원룸 식탁·테이블 고르는 기준에서 높이를 기준으로 갈라 뒀습니다. 그 경우 어디를 줄일지 정해야 하는데, 순서는 예비비가 아니라 생활 하한선 구간부터 줄이는 게 덜 아픕니다. 예비비는 마지막까지 지키세요.
예산을 짜다 보면 걸리는 질문
중고로 사면 예산을 더 줄일 수 있지 않나요?
품목을 갈라서 보세요. 행거, 건조대, 책상, 수납장처럼 고장 날 게 없는 물건은 중고가 확실히 이득입니다. 반대로 냉장고와 세탁기는 권하지 않아요. LG전자 보증 안내 기준으로 무상 품질보증기간이 냉장고·세탁기 모두 1년이라 중고로 넘어온 물건은 그 1년이 이미 끝나 있습니다. 부품보유기간은 냉장고 9년·세탁기 7년으로 넉넉하니 고쳐 쓸 수는 있지만, 수리비가 전부 내 몫이라는 뜻이죠. 사람을 불러 옮기면 배송비만 몇만 원이고, 10년 전 모델은 소비전력이 높아 전기요금으로 차액을 다시 냅니다. 잠자리와 냉장고는 신품, 나머지는 중고 — 이 선만 지켜도 배분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표에 침대나 옷장 같은 가구는 왜 없나요?
첫 50만원에서는 가구를 빼는 게 맞다고 봅니다. 원룸엔 붙박이장이 있는 경우가 많고, 없더라도 행거와 수납박스 조합이 옷장 값의 5분의 1로 같은 일을 하거든요. 침대 프레임도 접이식 매트리스를 쓰면 당장은 없어도 되고, 필요해지는 시점은 보통 이사 한 번을 겪은 뒤입니다. 가구는 두 번째 예산에서 다루는 항목입니다.
할부로 조금 더 좋은 걸 사면 안 되나요?
한두 품목이면 괜찮지만 배분 전체를 할부로 늘리는 건 다릅니다. 자취는 2년 단위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고, 그때 부피 큰 가전은 팔거나 옮기는 데 또 돈이 듭니다. 할부가 끝나기 전에 처분 비용이 먼저 오는 구조라면 그건 예산을 늘린 게 아니라 미룬 것입니다.
오늘 할 일은 장바구니 채우기가 아니라, 계약한 방의 옵션을 확인하고 위 표의 숫자를 자기 생활에 맞게 고치는 것입니다. 구간별 숫자가 정해지면 쇼핑은 하루면 끝나요.
이 글은 상품 스펙과 실사용 후기를 기준으로 분석한 내용입니다. 가격은 수시로 바뀌니 구매 전 판매 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